아쉬움이 남습니다.
생전에 애써 여쭙지도 못한 여러 가지 말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멀리 하늘만 바라보며, 거의 말씀이 없으셨던 당신.
이젠 저도 그러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그 옛날 당신이 살아 계실 때는 왜 여쭈어볼 생각조차 못 했을까요?
제가 군대 입대하던 당시, 그 흔한, "몸 건강하게 지내 거라."라는 말도 들을 기억이 없는데, "나서지 마라."는 그 한 마디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저는 왜 이리 가슴을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징용가서 비행장 강제 노역 중에 미군기 폭격으로 근처에 있던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그 말도 그냥 흘려들었던 기억...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언젠가는 제가 "당신의 뿌리(Root)"를 찾을 것이라는 암시가 아니었을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Root)"를 접하면서 문뜩 당신이 뿌리, 아니 저의 뿌리(Root)를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50에 절 낳으셨고, 이제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고, 알고 싶은 마음도 별도 없었던 과거의 뿌리를 찾는 것에 작은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그렇게 당신은 저에게 다가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징용에 끌려갔다"는 단서, 그 이상은 들은 적이 없는 당신의 뿌리(Root)를요.
■ 뿌리 찾기 흔적들 기록
1.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일제 강점기 피해자 명부 검색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짧은 한 줄의 기록.
2. 온라인 열람 신청.
1957년~1958년 우리 정부(노동청)에서 조사할 당시, 전라남도에서 작성한 "일정시피징용자명부(피해자 본인 및 가족의 신고로 작성되었다고 함.)" 사본을 전달받음. 이름, 주소, 생년월일, 피징용년월, 소환일이 이 표시된 문서.
생년월일이 주민등록과 차이가 남. 그 당시 주민등록과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음. 고향에서 8명이 끌려가신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들을 바로는 제 아버지 외 2분만 생존해 오신 것으로 들은 기억.
정보가 너무 부족함. 또한 모두 한자이고 필기체라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
3. 2000년 초반, 강제 징용 관련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는 고향 군청에 연락해 봄. 담당자 변경으로 문서 발견 못 함.
4. 자료는 더 찾다가 일본 정부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준 해군군속명부를 알게 됨.
군속(군무원) 동원이란? (출처: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
"군속(군무원)은 일본 육해군에 소속된 민간 인력을 말한다. 군인은 아니지만 최전선 군사시설 건축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군인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다. 당시 "군속", "군부", "군요원"등으로 불렀다.
"국민징용령, 각종 규칙에 의해 동원되었고, 중부, 서부 태평양 지역에서는 현지에서 채용하는 방법도 이용했다. 한반도,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중서, 서부 태평양 제도의 군 기지와 전선에 동원했다. 약 15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다.
"군무원의 관리체계는 노무자와 달랐지만 포로감시원 등을 제외하면 업무 내용은 노무자와 차이가 없었다. 국민징용령 이후 동원된 경우가 많았으며, 노무자로 동원되었다가 신분이 바뀌거나 선박 징발과 함께 선원이 군무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동원 당국도 노무자와 군무원을 공문서에서 혼용 등재하는 등 관리 체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5. 국가기록원에 정보 공개 신청을 해서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정부에 전달했다는 "구일본신상조사표"를 사본을 받음.
6. 조사표를 보니, 연월이 표시가 서기가 아니라 일본식 연호임. 실제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가 일치함. 일본식 연호는 그럭저럭 인터넷에서 조사해서 알았지만, 실제 징용을 했다는 곳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단서를 얻기 매우 어려움.
-所轄(소할): 吳施(오시??) *소할: 관할한 장소
-所在地(소재지??): 吳(오)
-身分(신분): 工員(공원)
-採用日時(채용일시): 20.1.8 (서기로 1945년 1월 8일임)
-解員日時(해원일시): 20.8.24 (서기로 1945년 8월 24일임)
6. 2005년 초에 정부에서 조사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향 군청에 문의함. 며칠간의 기다림 끝에 해당 문서는 모두 국가 기록원으로 이관되었다고 함. 공개정보 청구 신청하여 사본을 전달받음.
7. 몇 가지 단서가 보임. 1월 20일경 고향 출발, 여수 도착 후 일본 구레시 도착. 고송으로 가서 비행장 시설 강제 노역을 당함.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으나 2개월 후인 10월경에 부산을 거쳐서 고향에 도착함. (일본 측 기록과 2개월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 기억이 맞을 것으로 생각 드는 이유. 그 충격적인 경험하지 하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오는 2개월 차이를 인식 못 할까요? 광복 후, 그 2개월을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엉켜버린 뿌리가 된 기분이 듭니다.)
8. 암호 같았던 단서 일부 내용
-吳(오): 일본 히로시마현 구레시 지명
-高松(고송): 일본 다카마츠시 지명
-고송 공항: 일본 다카마츠시에 있는 공항
9. 구레시 정보를 찾아봄. (출처: 위키피디아)
-1902년 10월 1일 성립.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때까지 해군 중심지 도시
-구레 해군 본부 있었음.
-현재 해상 자위대 본부가 있음.
-1945년 5월 5일: 미군의 폭격기 히로 해군 공창이 폭격을 받았다.
-1945년 6월 22일: 미군의 폭격기 구레 해군 공창이 폭격을 받았다.
-1945년 7월 1일: 미군의 폭격기 시가지를 공습
-1945년 7월 24일 ~ 7월 28일: 미군의 폭격기 구레 군항 공습
*출처: 구글 지도
10. 고송(=다카마츠시) 정보를 찾아봄. (출처: 위키피디아)
-1945년 7월 4일 : 미군 공습으로 이재민 약 86,400명, 희생자 약 1,400명이 발생.
*출처: 구글 지도
11. 한 가지 한스러움. 기회가 있었지만 제가 일본어는 의도적으로 기피하여 배우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한으로 다가올지 몰랐습니다.
12. 뿌리 찾기는 이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멈춥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끊어진 뿌리가 자라서 나무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해 봅니다. ...
root: 뿌리, 근원, 조상; 뿌리를 내리다, 응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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