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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블로그 글에 오타가 있어요.”


가끔 제 딸이 제가 쓴 블로그 글을 읽고 오류를 지적해 줍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매우 부끄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다른 사람의 글을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빠 회사에서 무엇을 해요? 아빠가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쓴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요?”


이 질문에 쑥스럽게 대답해 줍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요.


책을 기획하고 만들다 보니 “지휘자”라는 말로 분에 넘치게 저 자신을 표현해 봅니다.


투고된 원고를 검토해서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또는 어떤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기획안이 서면 회사와 조율 전투를 시작합니다. 


그런 첫 조율” 후 책을 출간하기로 하면, 이제 책과 연관된 많은 사람과 본격적인 “조율”에 들어갑니다. “저자, 원고, 디자이너, 삽화가, 녹음실, 성우, 오퍼레이터, 인쇄소 관련자”뿐만 아니라, “편집자” 상호 간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나긴 조율”.


이렇게 조율이 끝나고 책이 나와 독자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그 기다림과 결과는 “조율”보다 더 혹독할 수 있습니다. 바로 원하는 만큼 선택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그 “조율”의 결과를 볼 때, 실망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자라도 책을 읽고 살아가는 작은 나침반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다시 그 “조율”을 시작합니다.


다른 편집자처럼, 저는 마치 옷을 만드는 사람처럼 남의 글을 재단하고,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변경하고 추가합니다. 심지어는 단순한 사과 그림 하나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삽화가에게 “벌레”를 꼭 넣어 수정해 달라고 퇴짜를 놓기도 합니다.


그러한 제가 이제 블로그 글을 씁니다.


다른 사람의 글은 “고치고 싶은 내용”이 그리 잘 보이는데, 제가 쓴 글은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그래서 제 딸이 보고 오류가 있다며 “제발 틀리지 않게 써 주세요.”라고 할 때마다 저는 편집자도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종 블로그 글을 발행하기 전에 몇 번이나 검토하고 글을 고치고 다시 쓰지만, 만약에 다른 편집자가 제 글을 본다면 몇 줄이나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모두 다시 쓰라는 그런 말을 저는 들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의 상대성”이라는 표현으로 저 자신을 변명해 봅니다. 


“남의 것은 잘 보여도, 자기 것은 잘 안 보일 수 있다.”


“교정하다”는 뜻의 영어 어휘로 proofread가 있습니다. proofread는 2015 개정 영어과 교육과정에 등재된 것이 아닙니다.


proofread를 분리해 보면 proof와 read라는 비교적 익숙한 교육과정 어휘가 눈에 들어옵니다. 


proof는 교육 과정상의 중고등학교 기본 어휘이며, read는 초등학교 권장 어휘로 어원 등의 설명은 생략하고 뜻을 다음과 같이 바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proof: 증거, 증명, 품질 검사, 교정; 통과 안 되는; 검사하다, 교정하다

read: 읽다, 낭독하다, 독해하다, 가리키다 

*proofread: 교정하다, 교정쇄를 보다


위와 같이 뜻을 써놓고 보니, proofread는 먼저 읽어(read)야지 글의 내용을 검사하고 증명(proof)할 수 있는 것임을 느낍니다. 


*책은 사람이 쓰고 만듭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과 그 글을 교정하여 고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글은 “교정하다”의 영어 어휘(proofread)를 이용해서 단어 학습하는 것이 주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빨간 볼펜 자국과 수정액 흰 자국을 지우지도 못한 채 퇴근길에 오르는 한 편집자의 짧은 소회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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