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체온



반응형

고리타분하다고 대부분이 느끼는 교과서.
 
그래도 교과서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누군가를 보았기에, 교과서 편집자로서의 경험을 두서없이 말해볼까 합니다.
 
https://youtu.be/GJ3vcrNrmCU 
 
이런 글을 쓰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러한 마음도 가지지 않았지만, 오늘 내리는 많은 비 때문인지 꼭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2001년 2월 15일 인걸로 기억됩니다. 서울에 아주 많은 눈이 내려,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서울 지하철을 무료로 태워주었던 그날, 교과서 수정본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하는 날이었습니다.
 
인쇄된 책을 받아야 하는데, 눈이 너무 지하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되어, 자동차가 아닌 경복궁역에서 책을 받은 후, 우산도 쓰지 못하고, 눈을 맞으며, 책이 젖지 않도록 잘 포장한 후, 그 긴 길을 걸어서 한 박스나 되는 책을 경복궁을 돌아 삼청동을 지나 평가원에 마감 시간을 넘겨서 제출했던 그때의 기억은 아마도 가장 마음 졸였던 교과서 제출 시간이었습니다.
 

 
전날까지 철야 근무 후, 지친 몸은 눈 때문에 녹초가 되었지만, 마지막  제출하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걸어왔을 때, 제출의 어려움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지하철 요금 무료라는 작은 선물은 그래서 20년이 넘은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교과서"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교과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서 완성됩니다. 순서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더 세부적인 일정치 추가될 수 있으며, 아래의 대부분의 절차가 10번 이상 무한 반복됩니다.
 
1. 교과서 집필진 구성
2. 교육과정 고시
3. 교육과정 분석
4. 기존 교과서, 외국 교과서 등의 자료 수집 및 분석
5. 교과서 체제 구상
6. 교과서 샘플 단원 작성
7. 교과서 디자인 완성
8. 교과서 본문 집필 세부 목록 작성
9. 교과서 원고 집필
10. 교과서 원고 검토 및 완성
11. 교과서 조판 진행
12. 교과서 컷, 삽화, 사진 등의 발주 및 완성
13. 교과서 가쇄본 완성 및 검토
14. 지도서 체제 구성
15. 지도서 샘플 단원 원고 집필
16. 지도서 디자인 완성
17. 지도서 집필 제부 목록 작성
18. 지도서 원고 집필 및 검토
19. 지도서 조판 진행
20. 지도서 컷, 삽화, 사진 등의 발주 및 완성
21. 지도서 가쇄본 완성 및 검토
22. 전자저작물 업체 선정
23. 전자저작물 체제 구성 및 스토리보드 작성 및 검토
24. 프로타입 개발 및 검토
25. 전자저작물 촬영, 애니메이션, 녹음 진행 및  검토
26. 전자저작물 시제품 완성
27. 최종 교과서/지도서/전자저작물 가쇄 본 완성 및 검토
28. 교과서/지도서/전자저작물  심사본 인쇄 및 검토
29. 심사본 제출
30. 심사본 검정 결과 발표
31. 디지털교과서 개발 시작
32. 수정본 제작
33. 견본 제작
34. 전시본 제작
35. 최종 검인정 교과서 합격 고시
36. 디지털 교과서 심사본 제출
37. 디지털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38. 디지털 교과서 수정본 제출
39. 디지털 교과서 최종 합격 고시
40. 학교 배포본 최종 인쇄 및 디지털교과서 파일 업로드
41. 학교 현장 배포 및 사용
 
평균 10여 명의 집필진, 권당 4명 정도의 편집자, 그리고, 디자이너, 오페레이터, 삽화가, 사진가, 영상 촬영 감독, 촬영 스텝, 학생 배우, 성우, 애니메이터, 프로그래머 등의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 지금 학생들이 보고 있는 교과서입니다.
 
2022 교육과정이 올해 고시될 예정인데, 올해부터 위의 1번부터 진행되고 있으며, 특별한 연기 사항이 없으면 중고등학교 1학년 기준으로 2025년 3월에 새로운 교육과정의 교과서가 학교에 순차적으로 보급될 것입니다.
 
보통 2~3년 정도의 개발 기간 중, 수많은 사람들과의 회의, 협의, 수정 등의 작업이 마지막 교과용 도서를 제출하는 그날까지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의 산물이 바로 교과서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교과서를 개발하는 2~3년 동안, 주말 근무와 매일 야근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또한 심사본 제출 1달 정도는 그야말로 거의 매일 철야를 해야 할 정도로 일해야만 완성되는 것이 교과서일 수 있습니다. 이는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이런 전차로, 아쉽게도 첫째 아이의 돌잔치를 하지 못한 미안함을 여전해 가지고 있는 그런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과서가 경우에 따라서는 검정 탈락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교과서가 아름답다고요?
 
많은 비판이 있는 줄 알지만, 그대로  교과서는 다른 책 보다 훨씬 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슬픔, 번뇌, 고뇌, 그리고 마음 졸임을 거쳐서 나온 것이며, 이 책이 그대로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아주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일 수 있기에 "교과서는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주 개인적인 한 교과서 편집자의 넋두리였습니다.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